『오키나와 생활사』 연재를 시작하며
번역 책임자_ 손지연
이 책은 2022년 5월부터 『오키나와 타임스』에 「오키나와 생활사沖縄の生活史」라는 이름으로 연재되었던 것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2021년 12월부터 100명의 질문자와 100명의 응답자를 모집하는 공고를 냈고, 거기에서 선정된 이들의 육성을 통해 100가지 이야기(증언)가 탄생한 것이다. 오키나와 연구가로 잘 알려진 이시하라 마사이에石原昌家와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岸政彦의 감수로 2023년 5월, 미스즈쇼보みすず書房에서 간행되었다. 이 책은 경희대 글로벌오키나와연구소 총서의 일환으로 한국에 번역·소개될 예정이며, 그 가운데 일부를 출판사의 허락하에 연재하기로 한다. 어떠한 경위로 이 방대한 분량의 오키나와 전쟁의 기억, 오키나와의 생활사를 기록하게 되었는지는 이 책의 서문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오키나와 생활사 서문
감수자_ 기시 마사히코
이 책은 2022년 5월부터 『오키나와 타임스』에 「오키나와 생활사」라는 이름으로 연재되었던 것을 한 권으로 묶은 것입니다. 2021년 12월부터 100명의 질문자와 100명의 응답자를 모집하는 공고를 냈고 그 방대한 프로젝트에 많은 분들이 호응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질문자 여러분, 응답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100분이 들려주신 이야기들에 덧붙여 쓴 글은 한 줄도 없음을 밝혀 둡니다. 여기에 실린 100여 개의 ‘오키나와 생활사’는 모두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절실한 마음의 기록입니다. 작고 평화로운 오키나와 섬이 일본과 미국에 휘둘리고 짓밟히던 역사와 시대를 씩씩하고 강인하게 살아간 이들 기록에는 섬사람들의 애환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오키나와를 살아간 이들의 아주 일부분의 기록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쟁 이후의 오키나와를 살아간, 또 지금의 오키나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 숫자만큼이나 방대할 것입니다. 그 아주 작은 일부를 여기에 기록했을 뿐입니다.
당연하겠지만 오키나와를 살아간 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그 숫자만큼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우리 야마토인들은 인식해야 합니다. 오키나와 땅에 기지와 빈곤을 밀어붙인 것이 우리들이라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역의 생활사나 인간의 생활사를 빠짐없이 기술하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종종 오키나와가 안고 있는(무리하게 안겨준) 문제에 대해 너무도 쉽고 간단하게 ‘답’을 내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찾은 답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오키나와 생활사」 프로젝트를 통해 그러한 생각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이 책은 오키나와 사람들의 생생한 육성을 담은 더없이 귀중한 증언집입니다. 오키나와현, 일본을 넘어 세계로 널리 읽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역사학이나 인류학, 민속학, 문학, 사회학 등의 영역에서 방대한 양의 ‘오키나와 연구’가 축적되어 왔습니다. 학술적 연구만이 아니라 저널리즘, 르포르타주 등 일반 인문학 분야에서도 ‘오키나와’는 그 자체로 중요한 테마입니다.
그런데 평범한 일반 오키나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겨진 것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키나와 사람들의 씩씩하고 강인한 삶 속으로 파고들어간 얼마 안 되는 저술 가운데 책의 공동감수를 맡아 주신 이히하라 마사이에 선생의 명저 『향우회 사회』(ひるぎ社, 1986)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전후 오키나와에서 결성되어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세력을 확장해 간 ‘향우회’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향우회란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네트워크를 말합니다. 향우회는 전쟁 전부터 있었는데, 전쟁이 끝나면서 나하 도심에서 확대되었습니다. 타지에서 고향 사람끼리 서로 도우며 살아가기 위한 기반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향우회 사회』는 전쟁 이후의 오키나와 사람들의 울고 웃는 생활상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키나와 사람들의 생활상-향우회와 같이 동향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이들, 먹고 살기 위해 본토나 해외로 떠난 이들-은 오키나와가 걸어온 고난의 역사와 함께 만들어진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오키나와 전투 경험과 전쟁 이후의 삶을 듣는 작업을 계속해 가고 있습니다. 전쟁의 비참한 경험과 전쟁이 끝나고 난 뒤 극심한 혼란 속에서 부흥을 일궈가는 모습들. 지상전의 참혹한 기억을 비롯한 여러 이야기들.
전쟁 전부터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식량과 물자를 비롯해 집과 학교까지 접수되었다는 사실들. 지상전이 격화되면서 남부와 북부로 피난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사연, 피난하던 길에 남의 집 고구마나 사탕수수를 먹으며 배고픔을 견뎌 냈던 일. 그리고 전쟁이 긑나고 본도 사람들은 포로가 되었고, 수용소와 미군이 접수한 민가들에서 생활해야 했던 사람들. 기지 안 식료품과 물자를 훔쳐서 연명해야 했던 일. 그것을 팔아서 생활에 보태기도 했습니다. 이를 ‘전과戦果’를 올린다고 말했는데, 당시 아무도 이를 도둑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본격적인 ‘부흥’의 시대가 열리면서 ‘스크랩 붐’이 도래했습니다. 사람들은 오키나와 본도에 파묻힌 수많은 탄피와 파편 조각을 주워 팔아 돈을 벌었습니다. 불발탄이 폭발해 상처를 입거나 사망에 이른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후 27년 동안이나 미점령 상태로 있어야 했습니다. 50년대와 60년대, 오키나와 역시 고도경제성장기를 맞이했습니다. 경제와 인구 모두 급증하던 시기. 특히 나하那覇 도심으로 많은 이들이 집중되었습니다. 『오키나와 타임스沖縄タイムス』와 『류큐신보琉球新報』 등 60년대 신문기사를 펼쳐보면, 고도성장기의 오키나와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읽을 수 있습니다. 도시화와 근대화, 경제성장 덕에 삶은 윤택해졌지만, 범죄와 폭력, 부의 격차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72년이 되어서 마침내 ‘복귀’되었지만 기지는 그대로 남겨진 채였습니다.
오키나와에 있어서 전후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여러 해석이 있겠지만, 나는 ‘소유권의 해체’라고 생각합니다. 소유권은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근간이 되는 것입니다만, 이것이 해체되어 전장에 그야말로 ‘내팽개진’ 채로 오키나와는 전후를 맞이했습니다. 가혹한 상황에서 오키나와 사람들은 창의력을 발휘하고 열심히 발로 뛰며 가정을 이끌어 오늘날의 오키나와를 일궈냈습니다. 거기에는 향우회의 역할도 컸는데 오키나와 사람들의 지혜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기획할 때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전후 오키나와를 살아간 이들의 삶의 궤적을 가능한 풍부하게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기보다 그 시대를 직접 체험한 이들의 기억과 감각에 의존하고자 했습니다. 오키나와어에 ‘윤타쿠ゆんたく’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자유롭고 편하게 수다를 떨 듯 말입니다.
여기에 실린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이야기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교과서나 역사서에 실릴만한 내용은 아닐지라도 하나하나가 귀중한, 오키나와 전후를 살아간 생생한 경험과 기억들입니다. 이 책 페이지 페이지마다 감동을 느끼지 않는 부분이 없습니다. 생생한 ‘오키나와의 전후’가 그곳에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몇 가지 기준을 정했습니다. 질문을 최소화할 것. 질문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기보다 말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주 구체적이고 방대한 양의 증언을 채록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복귀하던 날 무슨 일을 하셨나요?”라는 질문을 모두에게 받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이 많아 이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당 10.000자로 제한한 탓에 미처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예컨대 90세인 분의 90년을 불과 몇 시간 안에 듣는 것은 무리겠지요. 그 외에 여러 이유로 원고에 실리지 못한 내용도 다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마지막으로 증언해 주신 분들과 질문해 주신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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